계절은 어느덧 완연히 여름을 가리키고 찌는 듯 한 더위 속에 불쾌감마저 높여주는 어느 여름날. 푸르른 소나무 아래 휴식을 취하는 상상을 하며 그늘이 되어줄 것만 같은 한 갤러리를 찾았다.

작품실이라는 소개에 따라 들어간 방안에는 ‘솔향 갤러리’ 라 적힌 현판과 함께 방을 가득 메운 풍경화와 한지공예들을 볼 수 있었다. 독특하면서도 뛰어난 색감과 꽃잎 하나하나 다른 매력을 지닌 수많은 꽃으로 채워진 방안에는 꽃향기마저 나는 듯 화사했다.

오늘 예천뉴스에서 만난 사람의 주인공은 예인화우회 회원이자 한국미술협회 회원인 손후자(감천면 덕율리 문화마을)씨다.

◇ 누구에게 정식으로 그림을 배워 본 적 없기에 그녀의 그림은 정직하다.

29년 넘게 교직에 몸담아 온 그녀는 정직이란 교육 철학을 가지고 아이들을 지도해왔다. 우리나라를 짊어지고 나갈 아이들에게 항상 정직할 것을 가르쳤고 스스로 정직함에 모범을 보이며 교직생활을 해오셨다.

그녀는 그림에 있어서도 정직하다. 15년을 취미로 그려온 그림에는 정직함이 묻어난다. 누구에게 정식으로 그림을 배워 본 적 없는 늦깎이 화가라서 있는 그대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기에 정직 할 수밖에 없다. 풍경의 구도, 알맞은 색깔과 같은 전문적인 시각은 모르지만 있는 대로, 보이는 대로, 느껴지는 대로 그리고 칠하기 시작한 것이 그림과의 첫 인연이다.

교직생활을 하는 동안 10년 그리고 명예퇴직 후 10년. 그녀가 그림을 그린 지 벌써 20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다. 그동안 큰 업적은 없지만 자신 만에 발자취를 조금씩 남겨왔다.

한국미술협회 문경지부 회원전, 예인화우회 회원전, 경북미술협회전 등 6번의 단체전에 참가했고 2008년에는 그녀만의, 손후자라는 이름의 개인전을 개최하기도 했다.

또 교원실기대회 입선과 함께 경북 미술대전 입선 6회, 영남미술대전 입선 특선, 장려상 등 많은 수상 경력을 가지고 있다. 올해에는 작가로 선정되며 초대작가로사의 활동도 시작한다.

감정은 그림을 통해 나타나고 훗날 그림을 다시 보며 그때의 감정을 향수 할 수 있다.

그녀는 15년 동안 풍경화를 그려왔다. 아름답고 오래 기억하고 싶은 풍경들을 마음속에 담아두고자 캔버스에 옮겨 그렸다.

문경새재를 붉게 물들인 가을 풍경을 그린 ‘새재만추’, 오래 기억하고 싶은 고향의 모습을 그린 ‘고향 생각’ 그리고 시골길 맑게 흐르는 냇가를 그린 ‘가을 냇가’ 와 같은 작품이 그러하다.

2006년에는 지금 살고 있는 덕율리의 설경을 캔버스에 옮겨 놓았는데 지금은 그곳에 다리가 생기고 지형이 변해 버려 다시는 직접 볼 수 없는 곳이 되었다고 한다.

그녀는 “사진을 찍어 간직하는 것도 풍경을 오래 남기고 기억되기에 좋은 방법이다.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더 사실적으로 생생하게 간직할 수 있는 것이 사진의 매력이라면 그림의 매력은 느낌을 전달할 수 있는 것”이라 말한다.

“같은 나무를 보고 그린 두 개의 그림이 어찌 똑같을 수 있을까. 분명 다를 것이다. 나무를 보고 느낀 감정이 사람마다 다르듯 그러한 감정은 그림을 통해 나타나고 훗날 그림을 다시 보며 그때 느꼈던 감정을 향수 할 수 있다는 것”이 그녀가 말하는 그림의 장점이고 계속 즐겁게 그릴 수 있는 원동력이라 한다.

그녀의 그림에는 유난히 꽃이 많다. ‘여름이야기’라는 작품의 무수한 해바라기들, 뒤뜰의 야생화, 연꽃, 수련 등 그림에 등장 하는 꽃의 수도 많지만 가지 수도 정말 다양하다.

유난히 많은 꽃그림에는 무언가 사연이 있을 것만 같아 꽃을 많이 그리는 이유를 물었더니 대답은 의외로 간단했다. “저도 여자니까요.” 그렇다. 대답 역시 정직했다.

우리 어머니들이 그러하듯 그녀는 항상 여자가 아닌 어머니의 역할을 많이 해왔다. 가정에서 어머니로서 남편 을 내조하고 자식들을 돌보고 뒷바라지를 해왔다.

교직생활을 하면서도 어머니처럼 푸근하고 아끼는 마음으로 아이들을 가르쳐왔다. 하지만 계절마다 갖가지 피어나는 꽃의 아름다움을 알고 아름다운 것을 좋아하는 그녀는 여자다. 그림을 통해 아름다움을 쫒기 시작했고 아름다움을 더 표현하고자 시작한 것이 한지공예다.

그녀의 한지공예에는 문양이 특별하다. 기존에 봐온 문양들의 틀에서 벗어나 직접 찢어 붙인 꽃무늬가 장식 되어져 있다.

5년 전 개포초등학교 아트타운에서 한지공예를 배울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 한지공예를 배우며 세계적으로 인정받고 있는 우리나라 전통이 깃든 한지를 자주 접하게 되었다.

한지공예에 들어가는 문양은 보통 물감으로 그리거나 오려 붙이기 마련이다.

하지만 그녀는 서양 종이는 가지지 못한 한지 특유의 입체감이 꽃을 좀 더 생동감 있게 연출해 줄 것이라 생각했다. 그리고 꽃잎 하나하나 찢어 붙이기 시작했다. 한지의 빛깔은 곱고 은은하며 부드럽고 포근한 느낌을 주기에 고이 찢어 붙이면 향기마저 나는 듯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다.

◇ 모자람을 기쁘게 인정할 줄 아는 사람이 여유를 느낄 수 있는 사람

그녀의 한지공예 꽃문양은 시간이 오래 걸린다. 봉오리에서 피어나는 꽃잎처럼 하나하나 정성들여 찢어 붙이기에 작품을 하나 완성하는데 꽤 많은 시간이 소요된다.

하지만 그녀는 “모자람을 기쁘게 인정할 줄 아는 사람이 여유를 느낄 수 있는 사람”이라고 말한다.

조금 어려운 말 같지만 그녀가 작품 활동 하고 있는 모습을 조금이라도 지켜보고 있으면 절로 고개가 끄덕여진다. 할 수 있지만 하지 않고 그 남겨두는 것이 억지로 작품을 완성하는 것보다 즐거움을 느끼는 것이 그녀가 생각하는 여유라는 것이다.

“모든 이들은 길고 긴 길을 달리고 또 달려간다. 저기다 싶어 달려가 모퉁이를 돌면 또 다른 길이 나오고 끝이라 믿고 온 힘으로 오른 언덕에는 다시 내리막길이 이어짐이 사람 인생사”라 말한다. 하지만 그녀만큼은 끝을 아는 듯 한 미소로 삶에 여유를 즐기고 있다.

몇 시간이고 작품 활동에 매달려 완성하고 또 완성해서 주위 사람들에게 실력도 뽐내고 개인전도 자주 열어 보는 이에게 달콤한 칭찬을 들을 수도 있겠지만 그녀는 그렇게 서두르지 않는다.

느긋하게 꽃잎하나 한지로 고이 뜯어 붙인다. 그리고 나머지 여백을 감상한다. 여백을 빨리 메우려하기보단 여백에서 주는 여유를 즐기는 그녀의 모습은 보는 이마저도 편안하게 만들어준다.

그녀의 작품은 사람들에게 자신의 뒤를 돌아보고 자신의 모습도 다시 한 번 가다듬을 수 있는 여유를 가르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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