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소방장 조정현

소방서는 24시간 불이 꺼지지 않는다. 다른 관공서나 기업체의 사무실은 새벽까지 불을 켜고 일하는 곳이 거의 없는 데도 말이다. 그 이유는 화재ㆍ구조ㆍ구급 등 재난상황이 발생한 곳에서 생명과 재산피해가 우려되어 절박하게 소방서비스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아무리 소방서에서 신속하게 재난상황 신고를 받고 출동을 한다고 해도 출동하는 소방차량에 길을 양보하지 않고 ‘나 몰라라’하는 운전자, 주택가 이면도로에 불법주ㆍ정차한 차량들, 시장통로에 물건을 적치하여 유사시 소방차의 진입에 방해를 주는 사람 등으로 해서 불이 난 건물이 보이는데도 신속하게 진압활동을 하지 못하고 소방호스를 여러 본 펴서 진입하느라 재산 및 인명피해가 커지는 경우를 매스컴을 통해 종종 볼 수 있다.

화재의 초동진압과 응급환자의 소생율을 높이기 위해 소방차(구급차 포함)가 현장에 5분 이내에 도착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므로 소방서에서 화재 또는 사고환자 발생 후 최초 5분을 골든타임(Golden Time)이라고 한다.

화재현장이 5분 이상 경과되면 플래시 오버(Flash over)현상에 의해 불이 급격히 연소 확대되기 때문에 인명 구조의 현장 진입이 곤란해지며, 심정지 또는 호흡곤란 등의 응급환자의 경우에도 4~6분 동안 응급처치를 받지 못할 경우 뇌손상이 시작되어 소생율이 크게 떨어지기 때문이다.

따라서 화재나 구급현장에 신속히 출동하기 위한 긴급차량 출동로 확보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이에 대한 실정법을 살펴보면 소방기본법 제21조 1항 ‘모든 차와 사람은 소방 자동차(지휘를 위한 자동차 및 구조ㆍ구급차를 포함)가 화재진압 및 구조ㆍ구급활동을 위하여 출동을 하는 때에는 이를 방해하여서는 아니 된다.’고 규정하고 ‘이를 위반시에는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고 되어 있으나 실제 적용되는 사례는 거의 없는 실정이다.

미국과 유럽의 선진국에서는 오래전부터 ‘소방차 길 터주기’가 정착되어 소방차량을 비롯한 긴급차량이 출동하면 일반차량들이 긴급차량에 자리를 양보하며 좌우로 갈라지는 것이 흡사 애굽 군인들로부터 이스라엘 민족을 구하기 위해 홍해를 갈랐던 ‘모세의 기적’이 재현되는 것 같은 장관을 쉽게 볼 수 있다. 이것은 물질적인 풍요가 곧 선진국이 아니라는 것을 여실히 보여주는 장면이다.

우리나라는 예로부터 동방예의지국(東方禮儀之國)으로 이웃나라들에 칭송을 받아온 나라다. 하지만 현재 우리의 상황은 경제는 준선진국 대우를 받고 있지만 급격한 산업화의 휴유증과 무한 경쟁구도의 사회분위기에 편승해 ‘나만 잘되고 편하면 된다’는 잘못된 이기주의에 물들어 있다. 이러한 사고는 도로위에서 운전을 할 때도 그대로 드러난다. 긴급차량에 대한 양보는 고사하고 잘못된 운전습관인 무리한 끼어들기와 앞지르기를 운전을 잘하는 것인 양 착각하는 사람들도 많이 있다. 그러나 이제는 변해야 하며, 그 변화는 나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소방차 길 터주기’는 우리의 선택이 아닌 필수이며 내 가족과 이웃사랑의 실천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많은 사람들이 소방서에 긴급신고를 하고 애타게 소방차가 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을 지도 모른다.

도로에서 소방차의 싸이렌이 울리면 갓길로 차선을 바꾸고 서행하거나 일시 정지하는 아름다운 양보가 습관적으로 실천되고 일반화 될 때 우리는 후손들에게 경제적인 것뿐 아니라 이웃에 대한 배려와 사랑이라는 더 소중한 유산을 물려줄 수 있을 것이다.

(문경소방서 예천119안전센터 소방장 조정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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