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숭아 물들이기

한 번만~. 딱 한 번만 발라보면 안돼? 숙제를 한다는 핑계로 책상에 앉아 매니큐어를 꺼내 바르던 동생 은효는 무언가를 찾으려고 방 문을 연 엄마께 딱 걸려버렸다. 그럴 줄 알았다. 폼은 완전 공부하는 자세였지만 좁은 방안에 온통 고약한 냄새가 진동을 했기 때문이다.

“어이구, 내가 뭐라고 했냐, 냄새난다 했제?”

▲ 4학년 박재효학생

동생한테 쏘아붙였지만 사실 내가 발라보고 싶은 마음이 더 컸다. 며칠 후 엄마는 하얀 비닐 봉지에 뭔가를 짠 하고 보여주셨다. 그것은 말로만 듣고 눈으로만 봐 왔던 봉숭아였다. 할아버지 제사라서 산소에 절을 하고 내려오는 길에 논둑에서 ‘우리 공주들 손톱에 꽃물 들여줘야지.’ 하고 조금 따왔다고 하셨다.

“치! 이게 뭐가 이쁘다고... 차라리 간편하게 바로 바를 수 있고 반짝이도 들어간 매니큐어가 훨씬 낫지.” 하고 투정을 부렸다. 그러면서도 은근히 어떨까, 기대됐다. 우선 준비물이 필요했다. 백반 대신 소금을 준비했다. 백반을 넣으면 물이 잘 들여지기도 하지만 쉽게 벗겨질 수도 있다고 소금을 넣었다. 그리고 옛날에는 무명실과 동멩이를 사용했다는데 집에서 찾기 쉬운 플라스틱 절구통 방망이와 청테이프로 대신 하기로 했다. 방망이로 콩콩 살살 두들겨 빻아 꽃물을 냈다.

손톱 하나 하나에 곱게 얹어 비닐랩으로 돌돌 말아 청테이프로 고정시켰다. 열 손가락 모두 다 둘둘 감고 있으니 답답하기도 해서 벗기고 싶었지만 예뻐지려면 그 정도쯤이야 참아야 한다기에 꾹 참고 견뎠다.

‘손톱이 아름다워 질 거다.’ 생각하고 텔레비전을 보며 답답한 마음을 잊으려고 애썼다. 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팔 전체가 찌릿찌릿해 오면서 몹시 지루해졌다. 오랜 기다림 끝에 드디어 벗겨냈더니 에게게 이게 뭐야? 손톱뿐만이 아니라 손가락 마디에도 물이 벌겋게 들여져 있었다.

솔직히 생각보다 별로였는데...... 근무를 마치고 집에 오신 아빠는 내 손톱이 자연스럽고 보기 좋다고 하셨다. 그러면서 하시는 말씀이 봉숭아 물을 들이고 첫눈이 올 때까지 지워지지 않으면 첫사랑이 이루어진다나 어짼다나, 내가 몰랐던 영화같은 이야기를 하셨다.

어른들은 대부분 봉숭아 물들이기를 좋아하시고 예뻐라 하시는데 왜 그럴까? 곰곰 생각해 보았다. 아마도 시간이 갈수록 은은한 자연스러움과 무엇보다도 옛날 기억이 함께 해서 그렇지 않을까?

어렸을 때 아토피로 아주 많이 고생한 적이 있다. 그때 만큼은 아니지만 지금도 먹는 것 입는 것 바르는 것도 뭐든지 조심해야 한다. 나도 면역력이 길러지고 아가씨가 되어서 매니큐어를 맘 놓고 실컷 바를 때쯤에는 엄마가 동생하고 나하고 봉숭아 물을 정성스럽게 들여주시던 때가 그리워지겠지? 이번 경험은 힘들었지만 좋은 추억이 될 것이다.

                                                                    (예천동부초등학교 4학년 박재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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